[스크랩] 여시아문
여시아문 如是我聞
내가 이렇게 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들었단 말인가.
환상의 신의 말을 환청幻聽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부처님이 말씀한 진리를 들었단 말이다.
불교의 경전을 펼치면
어느 것이라 할 것 없이 대부분이
여시아문 이라는 글로부터 시작된다.
뜻은, 아란이라는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억을 더듬으며 기록한 것이기에
[내가 이렇게 들었습니다.]해서
여시아문이라고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부처님이 말씀한 그 말만 들었나.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때
[여시아문 = 내가 이렇게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된다.
아란은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시며, 옆에서
부처님 말씀이나 행위를 제일 많이 듣고 보았지만
가섭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 편집하는 데에 아란을 참석시키지 않았다.
오직 조건을 붙였다.
[네가 깨쳐서 돌아와라.]
20여 년 동안 부처님을 모시며 수행을 했으나
아직 깨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란은 이레 동안의 유예기간을
고심하며 몸부림치나, 기한은 다가오고 깨침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동안 못 잔 잠이나 자려고
베개를 베려는 순간 깨쳤다.
그래 결집(편집)에 참석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들었다.]는
단순히 스승의 명언이나 훈계하는 말을 듣고 기록한 것이 아니고
깨친 자가 깨친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래 아란만이 아니고 우파리라든가,
깨친 자가 깨침의 소리를 들어서 기록했을 때에는
여시아문이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새 말로 하면
깨친 자가 깨친 자의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어
깨친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깨친 자가 아니고는
깨친 자의 채널에 주파수를 맞출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그래 오늘이라도 우리가 깨치면
그 깨친 자의 목소리를 항상 들을 수 있다.
부처님의 육성만을 직접 순수하게 기록한 것은 하나도 없다.
깨친 자가 깨친 자의 소리를 듣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은 무엇을 깨쳐 말씀한 것인가!
대개 진리를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진리를 부처님은 법이라 표현했다.
하물며 부처님 당시도
서로 깨침이라는 채널을 맞추지 않고는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고 인정하지 않았거늘
무엇을 가지고 참 경과 가짜 경을 구별한단 말인가.
열반이란, 영원히 죽음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른 진리가 영원함을 의미한다.
그래 영원한 진리인 부처님 말씀은
그 진리의 말씀에 채널만 맞추면
영원히 여시아문이라 하며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짜 경과 참 경>
요새 들어와서 한국불교 둘레에
가짜 경과 참 경이라는 말이 자주 대두된다.
그러면 참과 가짜를
무엇에 기준을 해서 구별하여야 할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만대장경이나 절에서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인 줄만 알았다.
그것이 시대의 변천과 함께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
학문도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보기시작 한 것이다.
거기에 종교라 해서 열외일 수는 없다.
신이 직접 말씀한 것이다.
아니다.
부처님이 직접 말씀한 것이다.
아니다.
신의 종교라는 것은
신이라는 자체가 허구적 상상의 표현이니까
참과 가짜를 논할 가치도 없지만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할 것 같으면
좀 다르다.
실질적인 인물이었고
그분의 거룩한 행보는 이미 역사에
기록과 자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도
부처님 열반 후 말씀과 행위를 편집(결집)한 것이기에
여시아문 이라는 말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나我란
깨친 자가 부처님과 주파수 채널을 같이 맞춘
나이다.
그러기에 나란 꼭 아란 존자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깨쳐서 부처님의 진리에 채널을 맞춘 사람이면
[제가 이렇게 들었습니다.]
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후대에 부처님 말씀에 관해 진짜와 가짜가 논의될 것을 예견하시고
부처란 진리를 말씀한 여래如來이므로
내가 열반에 들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부처님의 말이라고 하며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진리의 법에 합당하여,
그 진리의 법에 채널을 맞추어
그 진리의 법의 말을 바르게 들으면
내가 말한 것이고,
아무리 나의 말이라고 해도
진리의 법에 합당하지 않으면
나의 말이 아니다.
하고
여기서 진리의 기본은 삼법인三法印이다,
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