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우주가 우주에게...
새침한 보살이 있는데
노보살님 인데도 샘이 많고 스님께 독점욕이 있었다.
헐~;; 할마니 왜그래???? 하고 싶지만...후환이 두렵다..ㅎㅎㅎ
암튼,
젊은 처자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어느날
내가 들어오자 한번 쳐다본다.
그 순간 명치쯤의 위치에서 새끼손톱 반만한 다이아몬드 같은게 톡 튀어나왔다.
살(殺)이다.
어느 거사님이 절에 오셨는데, 나는 심부름 하느라 바빴다.
딱히 안면이 긴것도 아니라 대면대면 하다 나중에
잘 아는 거사님들께 인사할때 섞어 인사드렸더니
심중이 상하셨는지 삐쭉하셨다. 그 순간
엄지 손톱만한 다이아몬드 같은게 그이 가슴에서 나를 향해 톡! 튀어나왔다.
역시 살(殺)이다.
인류가 사랑한 다이아몬드는 그래서 사랑을 받았나 싶다.
꼭 다이아몬드 같은 모양에 반짝이였다.
보살의 작은 살은 내게 닫기도 전에 사그라 들었지만
기도 많이한 거사님의 살은 내게 와 박혔다.
순간 "흡ㅡ!" 하고 놀랐음이다.
그러면서 그 거사에게 정이 떨어졌다. 뭔가 마음이 훽 돌아섰다고나 할까..
반가운 기운을 받았다면 왠지 모르게 친근한 마음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그냥 거기 까진거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살을 주고 받으며 산다.
어느 기도인이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은 언젠가 더 심하게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닌, 자신이 낸 마음, 殺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미 내가 그것을 품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스님들의 경우는 신장이 직접 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살을 만들기도 하지만..
하지만 같은 응집력이라도 사랑으로 만들어진것은 다르다.
조상기도에 진력이 날때쯤, 왜! 내가 기도를 해 줘야 하는지!
지난한 일들에 짜증이 솓구쳐 안해! 결심을 하며 고집스럽게 펑펑 울때
반짝이는 무언가.
내게 내리는 축수.
조상들이 내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 마치 만화에 반짝이 효과처럼..
다이아몬드 가루 같은게 반짝반짝이며 내게 뿌려졌다.
거울을 보니 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화장발,조명발등등 온갖 특수효과가 발휘 된 듯한?
영혼들의 축수를 받는 순간 내 영혼도 그 마음에 공명되어 그렇게
반짝였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눈이 부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 후 기도 닿는 인연 영가들을 힘들어 하지 않았다.
허~참,
나 조상영가들한테 낚인건가..흠...ㅎㅎㅎ
내가 경험하고 내가 쓴 글들을 보면
내가 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미 프로그램 되어진.
작은 배
망망대해로 힘껏 밀어보내던
뭍사람의 지극한 마음,
그 바람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연따라 보고 겪게된 일들을 보면서
나는
아,
이미 저 사람은 어쩔 수 없구나
혹은, 과보가 참 크겠구나 하고, 더 이상 어찌들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소식을 보고,듣고 꽤 오래 옆에 있어보니
그들이 겪은 모든것은 종교와 상관없이 그저 법계가 주는 "숙제" 였다는 것을 알았다.
전생에, 비구 되기가 소원이 사람이 있었다.
소원만 했을 뿐 그에 합당한 노력은 별 없었던 그는
현생에 막행막식마누라 타령하는 비구가 되었다.
나는 거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고 그 과보도 엄청나다고 생각했지만
더욱 놀랍게도 그는 십수년의 가짜 승려이기까지 했다.
승려증 위조에 호법부에 걸릴까봐 종단도 옮겼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노릇이 비구 였던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사실보다 더 큰 짓을 저질렀음을 보고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그 과보가 정말 크겠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범부의 눈일뿐
강원도 가보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불" ㅡ
성심으로 예불을 드렸고, 그 과정에서 신심을 길러갔다.
차별없는 불보살의 가피속에서 점차 스님같은 심성이 된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불법승려(?)신분을 개의치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당신 가짜지?" 라고 물으면 "네, 그렇습니다" 하는 얼굴이 되어 갔던것이다.
법계가 그에게 준 공부-신심 기르기-를 그는 잘 해낸 것이다.
어느 거지가 빌어먹을 팔자인 것을 받아들이고
더이상 투덜이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져먹는 순간
부자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나는
각각의 사람을 각각의 모든 불성이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저렇게 살까, 왜 저렇게 고생을 하게 되었을까 라고 보이지만
거기서 배워야 하는것, 반드시, 얻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는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순간, 진참회가 되어, 우주에 맺혀 있던 원망들이 풀려 나도 편안해 진다.
나를 향해, 누군가 우주에 뿌려놓은 그 마음을 내가 알아주면 그 기운이 여한이 없지 않겠는가
음양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없다.
인연 맺은 스승이라면 모를까..
남의 인생이다.
더 정확히는, 그의 불성이 이끌고 있는 그의 공부인생인 것이다.
알아서 공부시키고 있는것이다.
법계는 오로지 그 한가지ㅡ
태초의 완벽에서 떨어져 나와 돌고있는 우리,
그의 근원에 있는 욕구-다시 완전 하고자 하는 욕구-에 맞춰
이끌어 나가 준다.
지금의 모습
내가 원한 것이다.
내가 공부하기로 이미 약속한 모양인 것이다.
"제대로" 하기가 괴롭고 힘들지만 우린 모두 그렇게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가고 있는것이다.
내 친구는 불임 임에도 아기를 가졌다.
고등학교때 사업실패로 부모가 시골로 쫓기듯 가, 혼자 남아 학업을 마쳤다.
의지할 수 있는것은 미친듯이 아버지주님께 감사하는것.
감사하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감사함은 현실에 순응함을 길러주고 피해갈 궁리 보단 성실히 부딫혀 업을 청산하는데
더 집중하게 하는게 아닌가 싶다.
왜 우리 부모는 자식에게 이렇게 의지하는가. 하는 속타는 심정으로 살다 시집을 갔는데
갔는데도 친정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헌데 군말없이 같이 노력해주는 남편을 보고
"가족"을 알아갔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부모를 봉양하며, 남편의 행동을 보며
희생과 사랑, 미안함과 고마움 속에서 "가족"의 참 의미를 알았기에
우주는 자식이라는 선물을 내려준 것일지도 모른다.
불만하고 원망했다면 그친구의 숙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선물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감사" 의 최면..ㅎㅎㅎ
우리는 숙제를 안고 있다.
법계는 언제나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우리가 조금만 더 정성껏, 유심히 가다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그 순간 업을 풀어낼 수 있는 실타래를 잡게 되며
그 한 생각으로 업은 다 불살라 버릴 수 있다.
업도 일종의 상 이므로.
공부 시키기 위한...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은 뻥이 아니란 말이다..
기도를 많이 해도 뭔가 답답함이 여전하다면
정작 가까운 곳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법계의 뜻을 알 수 있다면 가슴을 누르는 뜻 모를 답답함은 없다.
가피를 위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겪은 상황에서
그것을 겪지 않았다면 몰랐을..그 무언가, 보물을 찾아내야 한다.
결국 가피는 참회와 자비가 생겨나는 과정이지 않은가.
이러한 법계의 맞춤형 숙제를 알아내지 못하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그래서 어떤 경을 읽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하나 싶지만..
정확히는 내가 처한 이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그 마음을 진작에 먹지 못한 과거를 참회하며, 어떤 행동(보살행)을 해야하는지...생각해봐야 한다.
인과는 짓는만큼 받는게 아니다.
모르는 만큼 받는것이다.
가난한 이의 마음을 모르고,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윗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잃은자의 고통과, 얻은자의 허무함등...내 아상을 짓고 나와 다른이를 차별하여 몰라 주었을때 받는다.
그렇지 않다면, 계를 어긴 구마라집과, 원효스님등 여러 선사들이 시공을 넘어 이리 빛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참으로, 나도 남에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몸 이전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다 끝나간다.
이젠 현생의 내 공부를 시작 할 수 있을 듯 하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