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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큰스님 1984년 칠장사 소참법문 정리내용 (‘금강불교’ 79회 강독회에서)
11월13일 79회 강독회가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관 보현실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의 강독회 교재는, 「정통선의 향훈」으로, 이는 청화스님께서 1984년 안성 칠장사에서 성도재일 용맹정진 기간 동안 설하신 소참법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스님께서는 칠장사 동안거 해제시 칠장사에서 만등불사를 하셨고, 동안거 해제 후 태안사로 들어가시어 거의 폐찰에 이른 태안사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일으키시었습니다.
법문의 주요 내용과, 경주법사님의 해설을 위주로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응당 큰 서원과 원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함이 참된 수행법으로, 원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지난 회 강독회 교재였던 약사경을 보면 약사유리광여래불의 12대 서원을 시작으로, 칠불여래부처님의 44대원이 있고,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보살 시절 세우셨던 48대원, 이를 더욱 압축하면 오늘날의 4홍서원이요, 더 줄이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며, 한 마디로 한다면 '자타일시성불도'가 될 것이다.
이런 서원(本願)과 더불어 지켜야 할 것이 계율이다. 불성계(佛性戒)는 불성(佛性)에 알맞은 계율로, 불성을 따라 그대로 지키는 계율로, 보살계는 바로 불성계이다.
보살계를 살펴보면 적극적인 계율과 소극적인 계율이 있는데,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은 소극적 계율로, 우리가 지켜야 할 5계, 8계, 48계 등이 이에 해당되고, 이런 소극적 계율은 지지계(止持戒)라고 하는 반면, 작지계(作持戒)는 무엇을 해야 한다 등의 적극적인 계율로서, 이런 작지계중의 하나가 법사(法師)를 만나면 반드시 법(法)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도인 이라면 누구나 성불(成佛)을 원하지만, 그러나 원이 크지 않으면 이루기 어렵다. 그래서 법화경에도 「서원안락행(誓願安樂行)」이라고, 우리가 그 무엇을 하겠다고 서원을 세우면 우리 몸과 마음이 안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법어가 「위법망구(爲法忘軀)」이다. 즉 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유명한 2조 혜가대사가 달마대사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눈 속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팔을 잘라 바치는 각오를 보이고서 법을 구했다는 것은 위법망구의 대표적인 예라할 것이다.
그러면 이 같은 대원, 근본서원을 세웠으면 수행을 해야 하는데 무엇이 가장 수승한 것인가 하면 바로 참선법이다. 그러나 이 참선도 본원(本願) 즉, 근본서원이 앞서야 되고, 참선 수행을 하더라도 부처의 본뜻과 우리가 서로 계합하는 법을 먼저 마음에 간직하고 수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을 실상관(實相觀)이라 하겠다.
즉, 실상관은 먼저 “천지우주가 하나이다”라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 즉 너와 내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불성(佛性)의 자리에서 보면 “한 치의 간격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압축하여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보리방편문이다. 이 보리방편문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지도를 보고 또 보고 머리 속에 외우고 있다 보면 길을 갈 때 머리 속에 그려진 대로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참선법에는 조주선사의 무자(無字)화두를 드는 법도 있고,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의 오온개공관(五蘊皆空觀)과, 천지우주가 다 텅비어 있다는 제법개공관(諸法皆空觀)의 실상을 들 수도 있다.
또 ‘저 서산에 지는 해를 봐라’식의 일상관(日想觀)을 들 수도 있다. 이는 곧 우리 자성(自性), 우리 본래생명이 바로 불성(佛性)으로서, 서산에 지는 장엄한 태양을 바라보면서 거기에다 마음을 딱 모으고 딱아나가면, 원래 우리 마음이 부처이거니 산란스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불성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또, 극락왕생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정토삼부경[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의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16觀經, 觀經)에서 설하고 있는 「16관」을 통해 산란한 마음을 쉬고 차분히 극락세계 국토를 관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즉 “판때기 이빨에 털 나온다“와 같은 화두를 공부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화두를 들 때는, 앞 뒤 다 자르고 ”無, 板齒生毛“처럼 화두만 딱 들기보다는, Story telling식의 공안, 즉 그 화두가 생긴 연유, 배경 등을 생각하면서, 왜 그랬을까? 하는 식으로 드는 것이 좋다.
앞서 간단히 기술했지만, 참선 공부에서는 실상(實相)을 확실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우주의 전모를 그대로 확실히 관찰하는 것이다. 실상이란 곧 진리, 열반, 불성, 법성, 자성, 우주의 생명, 내 자신 등 그 무엇으로 표현하든 진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성일편이라는 말이 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때릴 타(打), 이룰 성(成), 한 일(一), 조각 편(片), 즉, 이것은 모든 천만(千萬) 갈래의 마음을 두들겨 하나로 모은다는 말로, 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 되면 사실은 참선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당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더라도, 말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기에 경전이 있는 것이다. 참선할 때 흔히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해서, 참선할 때 경전은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 말은, 글자 그대로는,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간다”는 말이지만 ,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졌을 때 버릴 수 있지 내가 가지지 않고서는 버릴 수 없듯이, 교(敎)를 통달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사상, 내 것이 되었을 때, 그때 교(敎)를 버리고 선(禪)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사교입선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당체를 말하는 이언진여(離言眞如)와도 상통하는 말이다.
또 이는 청화스님이 강조해서 말씀하신 「선오후수(先悟後修)」와도 상통하는 말이다. 먼저 이치를 제대로 알고, 개념적으로 깨달은 후에 닦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상관이 우리 마음에 확실히 박혀야 한다. 즉, “내가 업장에 가려서 모를 뿐이지 내 본바탕, 천지우주는 실상묘유요 진공묘유요 색즉시공이요, 공(空).가(假).중(中)이다. 인격적으로 표현하면 '삼신일불 아미타불'이고, 생명의 활력이 '관세음보살'이다”라는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보조국사의 법어에서처럼 백천만겁동안의 업장(百千萬劫 久習結業)이 즉시에 소멸된다는 것이다.
진리란,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부처님의 심심미묘한 법문을 말과 글로서 표현한 것이 의언진여(依言眞如)요, 그 골수와 핵심이 바로 우리가 공부하는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라 할 수 있다. 법성계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 있다. 즉, 법성은 불성과 똑 같은 뜻이고, 법성은 다 원융해서 두 상이 없다는 뜻이다. 즉 천지 우주는 오직 진리 그 자체로 한 덩어리이다. 다만 중생이 이를 구분할 뿐이다.
이처럼 천지우주를 하나로 보는 것이 일상삼매(一相三昧)이고 , 일행삼매(一行三昧)는 이런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도록 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사진을 찍은 것은 일상삼매요, 동영상을 찍는 것은 일행삼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명(無明)이란, 이처럼 ‘천지 우주가 하나의 생명체인 불성임‘을 보지 못하는 것이요, 이는 곧 사견(邪見)이요, 또한 죄(罪)인 것이다. 공부에는 그 과정에서 마구니(魔)가 따른다고 하나, 이는 공부에 틈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고, 틈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깨달으면 마구니가 바로 부처인 것이다. 원래부터 마구니란 없는 것이고 불성(佛性)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무상대도를 성취하고 무량중생을 제도한다’는 큰 서원(誓願)을 가지고서, 가행도(加行道)(가행정진)을 거쳐, 무간도(無間道)를 통과해 한사코 해탈도(解脫道)에 나아가서 승진도(勝進道)를 통해 무상대도(無上大道)의 길로 가기를 서원해야 할 것이다.
명관합장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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