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을 읽고 마음 바치는 공부
-- 정천구,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보림사) 중에서..
선생님의 공부법은 행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
다. 아침, 저녁으로 금강경을 읽고 평소에는 떠오르는 생각, 보고 듣는
것, 부딪혀 오는 일들 모든 것에 대하여 '미륵존여래불'하고 바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얼마간 선생님은 앞에 든 첫 번째 법문 내용
을 약간씩 변형해서 되풀이 말씀해 주시거나 어느 때는 무엇을 여쭈어 보
든지 아예 "거기다 대고 '미륵존여래불' 해라" 하시는 것이 보통이고 어
느 때는 그냥 "바쳐라" 하실 뿐이었다.
......
선생님의 바치는 공부란 마음을 비운다는 뜻도 되고 부처님께 드린다는
의미도 되는 것 같다. 마음속에 넣어 두었던 모든 것을 꺼내어 부처님께
드리는 것이니 불공(佛供)으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싫은 것
이건 좋은 것이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마음을 부처님께 바칠 수 있
으면 자기는 항상 씩씩하고 밝게 된다고 하셨다.
......
금강경을 읽고 바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첫째 주위가 안정되고 재앙
이 소멸되며, 둘째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지고, 셋째 그 밖은 기운이 주위
에 미쳐서 주변 세계가 밝아지며 육신의 인연으로는 위로 9대(代) 조상까
지 아래로 9대의 자손까지 그리고 옆으로 9촌에 이르기까지 업장의 해탈
과 재앙의 소멸을 이룰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 견성에 대하여
나는 또 견성(見性)에 대해서도 궁금해서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은 그것
도 처음에는 "나는 그런 것 모른다. 그런 것은 몰라야 돼" 하시더니 두
번째로 견성을 문의했을 때,
"옛날 내가 금강산에 공부할 때 산길을 가는데 길 옆 바위 위에 커다랗
게 견성암(見性岩)이라고 써 놓았더군. 그래서 그런게 있나보다 했더니 오
늘 네가 견성을 묻는구나" 하실 뿐이었다.
나는 그 후 다시 기회를 보아 "선생님, 견성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했더니, "견성이란 제 성품(性品)을 본다는 것인데 자기 못난 모습을 본
것이 대단할 것도 없고 자랑스러울 것은 더욱 없지" 하셨다.
● 금강경 독송회 법문
{ 금강경 읽는 공덕 }
태양 그 자체에는 본래 응달이 없다. 응달은 광명을 받는 물체가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우환도 다름
아닌 우리 내면의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된 응달이다. 그러한 마음의
응달, 즉 우리가 무시겁으로 지은 업보 업장들을 닦지 않고서는 마음
밝아지기 어려운 것인데, 금강경을 읽으면 그것들이 막 해탈되어 나간다.
금강경을 새벽 3시부터 7독 하면 그 사람의 성리를 밝게 해주시겠
다는 문수보살님의 서원이 계시다.
금강경을 읽으면 무엇보다도 재앙이 없어진다. 백 선생님께서는 아
침에 금강경을 읽는 것은 낮 동안의 재앙을 없애 주고, 저녁에 경을
읽는 것은 밤 동안의 재앙을 없애 준다고 하셨다.
하루 금강경 3독 이상 읽기를 몇 년씩 한 사람치고 현실 생활에서
나 자기 마음의 내면적인 성숙에서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독경
할 때마다 우리 마음이 부처님을 향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과거 생부
터 마음속에 연습해 온 안된다는 생각, 없다는 생각, 싫다는 생각, 못
한다는 생각등이 바쳐져서 해탈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거나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매일 아침 금강경을 7독씩 하고, 그 일을 잘 성취해서 부처님 전
에 복 많이 짓겠다고 원을 세워 보라. 공경스런 마음으로 백일 정도만
해도 일이 점차 원만한 방향으로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금강경을 많이 읽다 보면 내 마음속의 업장 분별이 많이 해탈되어
서 어느 때 무분별의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과거 생 업장
같은 것이 잠깐 비치기도 하는데 그건 내 마음의 어두움이 어느 정도
닦여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도 거기에 대고 경을 읽으면 내
마음의 분별이 쉬는 순간에 아주 밝은 해답이 얻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뭐가 알아지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자꾸 부처님께 바
칠 일이다. 시시각각 알아지는 모든 생각도 다 내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알아지면 알아지는 대로 모두 부처님께 드려야 더욱 밝아질
것이다.
[제 목] [금강경독송회](16) 스승의 가르침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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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신 것은 현대인의 생활에 맞는 수행방법
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닦는 집안에서는 보통 분별망상
(分別妄想)을 놓아라, 끊어라, 버려라, 쉬어라고 가르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가 아무 힘도 없이 무슨 방법으로 마음 깊숙이 숨어 있다가
올라오는 거센 업보와 번뇌를 놓고 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끊
겠다면 오히려 아상(我相) 연습이니 번뇌와 업보를 부처님 전에
공경심으로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음 바치는 이 수행방법은 당신께서 소사생활을 시작하신 후
금강경(金剛經) 속에서 깨치고 터득하신 방법으로 당신 또한 이
법을 통해 완벽한 밝음을 이루셨다. 선생님께서는 바치는 법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 경지가 각각 달라. 금강산 경지가 다르고 동국대학 시절이
다르고 소사에 들어와서도 처음의 경지와 중간의 경지와 나중의
경지가 각각 달라. 너희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나는 이 바
치는 법을 몰라 이 법을 깨칠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너희들처럼 쉽게 공부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번뇌를 공양 올리면 공양 올린 공덕을 짓고, 부처님에 대한 공
경심이 연습되며, 주고 받는 업보의 그늘이 해탈되어 밝음을 이
룰 수 있으니 지금 바로 이 순간 내 마음을 부처님 전에 공경심
으로 드리라고 하셨다.
또 금강경에 대해 법문하시기를, 금강경은 석가여래 당신의 마
음 살림살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신 말씀이다. 이는 몸과 마
음이 가짓껏 건강하셨던 석가여래께서 하루 해로 비유하자면 밝
음의 경지가 정오(正午)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셨을 때 하신
법문이기에 광명 그 자체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처님의 마음 덩어리고 광명 덩어리인 금강경을 수지
독송(受持讀誦)하면 3천년 전 석가여래의 밝음을 향하고 그 밝
음에 통하게 되어 자기 마음의 그늘진 업장은 해탈되고, 재앙은
소멸되고 성리(性理)는 밝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바치는 법을 포함한, 당신이 권하시는 바 수행의 개략을 옮겨
보면,
미륵존여래불을 마음으로 읽어서 귀로 듣도록 하면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던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을 연습
하십시오. 자신이 가지면 병(病)이 되고 참으면 폭발됩
니다.
이것이 닦는 사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으시되 직접 부처님 앞에서 마음 닦는 법을 강의
듣는 마음으로 배워 알고 실행하고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육체는 규칙적으로 일하시고 정신은 절대로 가만두십
시오.
이와 같이 백일을 되풀이 하신다면 대략 십 회 가량이면
자기의 숙명통(宿命通)이 나고 타인의 숙명도 알 수 있나니
이것은 아상(我相)이 없어진 연고입니다. 이것이 초심불교의
행상(行相)이라고 할까요.
주의하실 일은 공부하겠다면 탐심(貪心), 공부가 왜 안되냐
하면 진심(瞋心), 공부가 잘된다고 하면 치심(痴心)이니
이 세 가지 아니하는 것이 수도일진댄 꾸준히 하되
아니하지만 말면 됨이라.
고인(古人)은 사가이면면 불가이근근(斯可以綿綿 不
可以勤勤)이라 했지요. [백성욱 선생님의 서신 중에서]
* 斯可以綿綿 不可以勤勤 --면면히 이어지게 해야하지
열심히 열심히 할 것이 아니다.
>>>김재웅 법사님 법문중에서<<<
● 약력. <bbsdata>
이름 : 백성욱(白性郁) (1897-1981)
불교학자, 독립운동가, 스님. 성은 백(白). 한성부 연화방(蓮花坊)에서
1897년(광무 1) 8월 19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백윤기(白潤基)이다. 어려서
서숙에서 한문을 배우고, 1910년 7월 14세에 봉국사(奉國寺)에서 하옹(荷
翁)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후 전국의 절을 두루 다니면서 불교전문강원에서 6여 년 동안 수학,
1917년 서울의 중앙학림에 입학해서 1919년 졸업하고, 3.1독립운동 때에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이듬해 프랑스 파리로 가서 고등학교에 입
학, 2년 동안 수학하고, 1922년 독일 벌츠불록대학 철학과에 입학해서 3년
동안 수학했다. 1925년 동 대학에서 <불교순전철학(純全哲學)>이란 논문으
로 철학 박사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그 뒤 <불교>지를 통해서 박사학위 논
문을 8회에 걸쳐 발표했으며, 그 외에도 <근대불교운동에 대하여>, <인도
인의 동물 숭배와 반도불교>, <백림(伯林)불교원 방문기> 등을 같은 해에
발표했다. 한편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로 임명되어서 이로부터 3,4년
동안 근무했다.
1928년 불교청년회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김법린(金法麟), 김상호(金尙
昊), 도진호(都鎭鎬) 등과 함께 모여 이듬해 1월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
회를 열고 종헌을 제정하게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 모임이
모체가 되어 1931년 조선불교총연맹을 조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동맹은
1930년에 조직한 비밀 결사 만당(卍黨)을 은폐하기 위해서 앞세워진 단체
인 것이다. 만당은 신학문을 배웠던 30대의 젊은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조
직되었으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체 문서화하는 것을 금하고 선언문
이나 강령 등을 구전했다. 또한 '죽더라도 비밀을 엄수할 것'이며 '당의
(黨議)에 절대 복종할 것' 등을 서약했다.
그 뒤 금강산에 들어간 그는 단신 수도하며 논문들을 <불교>지 등에 기고
했다. 대중이 늘어남에 따라 안양암(安養庵)에서 지장암으로 옮겼으며, 그
후 7여 년 후에 일경의 압력으로 돈암동 자택으로 와서 좌선 수도하다가,
1945년 8.15광복을 맞았다. 광복과 함께 민중계몽운동을 벌이고 정국 안정
에 기여한 공로로 1950년 내무부장관이 되었지만 5개월만에 사직하고,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다.
1953년 57세에 동국대학교 총장에 취임했으며, 대학원에서는 금강삼매경
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1961년 5.16군사혁명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나 있다
가 1981년 9월 16일 나이 85세로 죽었다. 조명기(趙明基), 김갑수(金甲
洙), 박동기(朴東璂) 등 7백여 명의 제자들이 금강경독송회를 조직하여 그
의 유지를 잇고 있다. 저서로는 <백성욱박사문집>(1959)이 있다. [불교근
세백년, 동대70년사, 백성욱박사 송수기념 불교학 논문집]
저서 : 불교순전철학, 백성욱박사문집
시대(세기) : 일제, 한국 (20)
[출처] 법보신문>|작성자 WEDDING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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